자료실

  • [기고]광복되어도 돌아오지 못한 분들

  • 2024-12-27

내년 2025년은 광복 80주년입니다.

광복은 빛을 다시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깜깜하던 집에 전깃불이 들어오고, 어두운 마을 길이 환하게 밝혀지는 경험은 얼마나 신기한 일이었던지요.

없던 빛을 만난 것보다 빼앗긴 빛을 다시 찾은 감격이 더한 것입니다.

그 광복이 80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통치에서 35년간을 지냈습니다.

우리 말을 못 쓰게 하고, 내지인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라는 표어를 외치게 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감격의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러시아, 중국 등 먼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유명을 달리하시고 유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신 분들도 계셨으며, 살아있음에도 돌아오지 못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오늘은 그분들 중에서 김홍일 장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김홍일 장군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와 군사사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독립군과 광복군의 지휘관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김홍일 장군이 곧바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사연은 당시의 복잡한 국제정세와 관련이 깊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대한민국은 해방되었지만, 조국은 미군과 소련군의 군정하에 놓이며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광복군의 일원으로 중국에 머물면서 조국의 재건과 군사 조직의 정비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그는 광복군의 병력을 한국으로 송환하고, 새로운 국군 창설의 기틀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귀국은 여러 정치적, 군사적 요인으로 인해 지연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국공 내전이 격화되고 있었고, 국제 사회는 한국의 독립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광복군 동지들과 협력하며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결국, 김홍일 장군은 1948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귀국은 단순한 개인의 복귀가 아닌, 독립운동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초석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대한민국의 독립과 군사적 자주권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김홍일 장군의 이야기는 광복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간 독립운동가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열정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그 시대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되돌아보게 하며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장 김해석  

  • - 육군사관학교 40기
  • - 前 대한민국 육군인사사령관
  • - 前 국방대학교 총장
  • - 前 국방홍보원 홍보정책자문위원장
  • - 前 숙명여자대학교 석좌교수
  • - 現 한국국방연구원 이사
  • - 現 한양대학교 교육혁신처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
  • - 現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 회장(초대)


*출처 : 매일일보(http://www.m-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