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장군
“ 오성장군으로 불리는 김홍일 장군 ”
김홍일 장군의 ‘오성 장군’ 호칭은 중국군의 2성(二星)과 한국군의 3성(三星)을 합한 별의 수에 연원이 있다.
1926년 상해로 이동 후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북벌에 참여하고, 일본군을 상대로 용담전투, 만가령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군 장성으로 진급하였다. 중국군에서의 최종 계급은 2성 장군이다.
1948년 조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장군으로 임관하였고, 이후 육군사관학교장을 역임하며 국방개론 저술을 통해 창군 초기 한국군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38선에 연해 4개 국군의 사단이 북한군 대공세에 괴멸 상태에 이르자 ‘한강선방어’를 주장하며 시흥지구전투사령관으로서 소임을 다해 북한군을 6일 동안 막아내었고, 이를 통해 미군 참전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조국의 명운을 이어가는데 일조하는 등 수 없이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후 후진 양성을 위해 육군종합학교장을 역임하던 중 대통령 특명으로 1951년 3월, 당시 국군 최고 계급인 3성 장군으로 예편 후 주중화민국 대한민국대사로 부임한다.
이외에도 ‘오성 장군’ 이라는 호칭에는 국가가 가장 어려운 시기 구국의 투혼을 발휘한 김홍일 장군의 공이 ‘원수(元帥)’로 임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더욱 깊은 의미도 담고 있다.